2007년에 암스텔담 출장 갔다가 썼던 글...
관광할 것이 거의 없다는 암스텔담을 찾으면서 내 가슴이 설레였던건
첫사랑인 그 사람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빡빡한 전시회 일정 때문에 만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그래도 가장 바랬던 일이기에 시간을 내어 그 사람을 만나러 시내로
향했다. 기차를 타고 암스텔담 중앙역에 도착, 네덜란드 왕궁과 꽃시장을
거쳐 한참을 걷다가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에 다다랐다.
들어가기도 전 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시 만나면 처음 봤을 때의 그 느낌을
다시 받을 수 있을까? 혹시나 내가 그 때 그 감정을 지나치게 부풀려 꿈을
꾸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머리 속을 어지럽혔지만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발걸음을 내딛었다.
Van Gogh, 그는 미술에 문외한이었던, 사실 지금도 문외한인, 나에게 그림이
주는 감동이란걸 처음 알려준 나의 첫사랑이다. 첫만남, 첫키스, 첫홀딩...
모든 처음이란 것은 얼마나 가슴 떨리고 소중한 감정인가. 그 첫사랑을 다시
만나기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 암스텔담에 위치한 고흐 박물관을 찾았다.
작년 파리 오르쉐 미술관에서 본 고흐의 그림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의 그림 앞에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감동을 느꼈고 그의 색감에 열광
했으며 그의 터치를 따라 저절로 손이 움직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감동을 여기서 다시 받을 수 있을까?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그를
발견할 수 있을까?
반고흐 박물관은 시대별로 분류된 그의 작품들을 따라가면서 어떻게 내가
사랑하는 그의 모습이 완성되어 갔는지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집에 놀러가 첫사랑 그녀의 어렸을 적 앨범을 꺼내 보는 느낌이었다.
고흐라고 믿겨지지 않을만큼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내뿜는 1885년까지의
작품은 단발머리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공부밖에 모르는 그냥 평범한 모습의
여학생과 같은 모습이었다. 앨범과 그녀를 번갈아 보며 이게 정말 너 맞아?
라고 묻게 되는 너무 낯설은 모습... 그리곤 혼자서 속삭인다. 이 때 너를
만났다면 난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거야라고....
도시의 분위기 탓일까? 고흐가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이사간 1886년부터
그의 색채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고흐 특유의 터치감도 조금씩 등장하면서...
아직은 약간 모자란 듯한 모습에서 마치 막 대학에 들어가 조금씩 머리도
기르고 화장도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촌스럽고 어색한 새내기 시절이 떠오른다.
하지만 불안감을 가득 뿜어내며 사선으로 흐르는 짙은 하늘과 수백번의 터치로
거칠게 표현된 풍경은 마치 안경을 벗어버리고 조금씩 젖살이
빠지면서 언듯 언듯 지금의 사랑스런 모습이 내비치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가 아프기 시작한건 1887년부터인듯 하다. 그 시절의 작품부터 보여주는
매우 불안해보이는 그림의 구도와 점점 더 강렬해지는 원색의 색상들 - 도대체
누가 자화상을 그리면서 머리카락과 눈썹을 녹색으로 터치를 하겠는가! - 은 정상적인
시각 상태가 아님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무엇이 점점 그를 미치게 만들었을까?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대작 '합창' 교향곡을 작곡했고 시력이 왜곡되어버린 고흐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그림세계를 열었다는 건 나같은 범인은 이해할 수 없는
천재들만의 고통의 산물인듯하다. 인어가 흘리는 눈물은 보석이 되어 흐르듯이..
그 고통에 무임승차해서 감동을 느끼는 것이 조금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 미안함은 마음 한켠에 잠시 접어두고 보석이 되어버린 고통의 흔적들에
다시금 빠져들기 시작했다.
한장씩 앨범을 넘기다가 드디어 앨범의 마지막장을 펼쳤다. 그 속에는 내가
처음 보고 반했던 때 그대로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바로 오르쉐에서
보지 못했던, 그래서 꼭 보고 싶었던 작품 "해바라기"에...... 그 앞에서
첫만남때처럼 온몸이 바르르르 떨리며 무언가가 뇌를 관통하고 지나는 듯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나즈막히 떨리는 입술을 열고 고백을 한다.
"그래.. 이게 내가 사랑하는 너야..." 라고.....